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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ychology_Korean

제목 : 그 문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그 문을 지나가야 한다.

날짜 : 2016.05.29

글쓴이 : 심리학과 오범준

 


 

우리의 신문 사회면에는 굵직한 사건들이 자주 보고된다. 배가 가라앉아 300명여명이 죽고, 연쇄살인범에게 가족을 잃고, 묻지마 범죄를 당하거나 강간을 당하는 등, 트라우마의 징조가 될 만한 커다란 사건들이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익숙해졌다. 그만큼 이전까지는 드문 정신병이라 여겼던 트라우마가 이제 많은 사람들이 겪는 질병이 된 것이다. 이제는 나와 먼 낯선 얘기가 아니라 나도 언제든지 주인공이 될 수 있는 트라우마다. 이러한 상태에서 트라우마에 대해 관심을 갖고 알아감 으로써 트라우마에 대한 대비 및 해결을 논의하고자 한다.

트라우마란 심리학적으로 개인이 특정 사건으로 인해 받는 정신적 외상을 의미한다.즉, 영구적인 정신 장애를 남기는 충격을 뜻한다. 이러한 트라우마는 크게 스몰 트라우마와 빅 트라우마 2 종류가 있다.

# Small Trauma

: 삶에서 자신감 혹은 자존감을 잃게 하게 하는 일상의 경험 및 사건을 의미한다.


먼저 스몰 트라우마란 삶에서 자신감 혹은 자존감을 잃게 하는 일상의 경험 및 사건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어린 시절 또래들로부터 따돌림을 받은 경험, 집에 가는 중 너무 급하여 바지에 오줌을 싼 경험 등이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스몰'라는 단어는 이러한 사건이 일상생활에서 쉽게 접할 수 있음을 설명하는 것이다. 절대로 경험과 사건이 주는 고통이 작다는 것이 아니다.

 

영화 ‘ 붕대클럽’ 은 이러한 스몰 트라우마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주인공 와라 는 부모님의 이혼으로 어머니, 남동생과 함께 살고 있는 평범한 고3 여고생이다. 부모의 이혼은 아이들에게 커다란 상처를 남기는데 주인공 또한 부모님의 이혼이라는 사건으로 인해 무기력 해졌다. 우연히 병원을 찾은 와라는 옥상에서 디노라는 남학생을 만난다. 둘은 인터넷에 붕대 클럽이라는 홈페이지를 만들어 상처받은 사람들의 사연을 받고 상처받은 장소에 붕대를 감아주는 일을 시작하게 된다. 실제로 이 세상에는 상처가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자책골을 넣은 이후 자책하는 소년, 철봉을 넘지 못하여 자괴감을 느끼고 있던 뚱보, 남보다 키가 작아 슬퍼하는 아이 등. 그리고 그 상처는 다른 사람, 특히 기성세대가 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니게 보이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직접 경험한 당사자들에게 그 사건들은 스몰 트라우마로 남게 된 것이다. 어떤 사건이 성인에게는 사소한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어린이 혹은 청소년들에게는 큰 상처로 남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런 작은 사건들이 개인의 일생동안 자존감에 악영향을 끼치는 중요한 사건이 되기도 한다. 적어도 그 때 그 경험을 한 당시의 수치심. 당황함은 이후에도 계속 남아 개인을 괴롭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일상의 사소한 사건들이 스몰 트라우마로 이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모든 사람이 바지에 똥을 싸 본 경험이 있다고 하여 그것이 스몰 트라우마로 남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가정이 일차적인 바람막이가 되기 때문이다. 가정에서의 학대, 비난 혹은 방치가 존재한다면 아이는 부모와의 애착관계를 형성하는데 실패하고 결과적으로 스몰 트라우마를 겪게 되는 것이다. 어린 아이들은 자신의 창피한 부분이 드러날 때 성인에 비해 더 많이 당황하는 경향이 있다. 이때 주변 지인 , 가족 등의 반응이 매우 중요하다. 그들이 아이이 부족함을 지적하거나 비난하면 그러한 수치심은 더 커진다. 그리고 그러한 상황이 아이들은 ‘나에게는 본질적으로 결함이 있다’ 등의 부정적인 인식을 하게 된다. 결국 부정적인 자기 인식은 성장 과정에서 이뤄낸 긍정적인 경험 및 작은 성취들을 잘 인식하지 못하게 한다. 비난 혹은 학대 뿐만 아니라 무관심과 방치 역시 스몰 트라우마 형성에 기여한다. 영화 ‘ 인형의 집으로 오세요’ 의 청소년 주인공은 부모 및 주변 사람들의 무관심으로 인해 심각한 상처를 입는다. ‘ 너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어’ 라는 부모의 말은 그녀의 자존감 및 자아 정체성 자체를 파괴해 버린다.

스몰 트라우마의 치료를 위해서는 부모의 역할이 중요하다. 단순히 밥을 먹이거나 잠을 재우는 등 물질적인 양육을 제공하는 것에 그치면 안된다. 아이의 내면에 적절히 반응을 해주고 공감을 보이는 태도가 필요하다. 내가 힘들 때 언제든지 그것을 알아주고 도와줄 사람이 있다는 인식을 가지게 해야 한다. 이를 통해 자신이 무가치하고 사랑받을 가치가 없다는 왜곡된 생각을 제거할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스스로 상처받은 마음을 다스리고 통제할 수 있는 주체성으로 스몰 트라우마를 치료할 수 있다.


'스몰'이라는 단어는 이러한 사건이 일상생활에서 쉽게 접할 수 있음을 설명하는 것이다.

절대로 경험과 사건이 주는 고통이 작다는 것이 아니다.


# Big Trauma

: 빅 트라우마란 전쟁. 강간 등과 같이 일상을 초월한 큰 사건이 개인의 삶에 극적인 영향을 끼치는 사건 및 경험이다


2번째 트라우마는 빅 트라우마이다. 빅 트라우마란 전쟁. 강간 등과 같이 일상을 초월한 큰 사건이 개인의 삶에 극적인 영향을 끼치는 사건 및 경험이다. 트라우마는 대부분 악몽, 플래시백 등의 외상 후 스트레스 증상을 유발한다. 특히 트라우마를 경험한 사람들은 많은 경우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지각을 하는 경향이 있다. 난 뭔가 잘못했다 등 책임감, 나는 위험하다 등의 안전, 나는 무기력하다 등의 조절감과 연관된 부정적인 생각들이 대표적이다. 그러므로 제삼자 관점에서 희생자들은 과도하게 비합리적인 사고에 얽매여 있는 것처럼 인식된다. 즉, 우리 사회에는 빅 트라우마 희생자들을 보며 지나치게 과민 반응하는 것이라고 여기는 편견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런 편견을 가진 상태에서 주변 사람들은 트라우마 희생자들에게 섣부른 조언을 한다. ‘ 다 지난 일이니 잊어라’ ‘ 죽은 사람은 어쩔 수 없다. 너라도 살아가야 하지 않겠냐.. 그러나 이러한 조언들은 오히려 트라우마 피해자들을 괴롭게 한다.

영화 ‘ 여자 정혜’ 는 빅 트라우마를 겪은 희생자들이 트라우마를 겪은 이후 취하는 태도가 어떠한 지를 보여준다. 정혜는 어릴 때 친척으로부터 강간을 당한 트라우마가 있다. 트라우마의 희생자인 정혜의 일상은 단조로움 그 자체다. 그녀의 삶 속에서는 행복하다 든지, 슬프다 든지 하는 감정의 변화가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그들은 과거의 극적인 감정을 유발할 만한 어떤 자극과도 직면하지 않으려 주변 상황과 거리를 둔다. 기본적인 대인 관계 마저도 기피한다. 다시 말해서 기억에 의한 고통을 마비시키기 위해 삶을 최대한 무미건조하게 만든다. 이러한 태도가 극단적으로 치닫게 되면 내 자신이 내가 아닌 듯한 이인증 및 비현실감이 생긴다. 표면적으로는 평온한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겉과 달리 평온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 에게도 무미건조한 삶은 부자연스럽다. 그들도 내면에는 인간을, 사랑을 공감을 절실하게 원하는 마음이 있다 감정을 조절할 자신이 없으니 감정 자체를 마비시키는 것은 진정한 평온함으로 이어질 수 없다. 진정한 평온을 느끼기 위해서는 긍정적인 경험의 기회, 삶의 새로운 즐거움이 필요하다. 다양한 좋은 경험들이 트라우마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이다

이와 같이 빅 트라우마의 영향력은 엄청나다. 건강한 자아도 끔찍한 트라우마 앞에서는 무용지물이다. 과거에 아무리 좋은 부모 관계 및 세상에 대한 믿음을 갖었더라도 트라우마는 그 모든 것을 무너뜨린다. 인격의 변화가 오고, 정신적으로 극도의 혼란을 경험한다. 기존의 세상에 대한 신뢰감이 깨지고 세상과의 단절을 하게 된다. 점점 주변 사람과의 우정, 사랑 등의 모든 애착이 하나씩 깨져나간다. 이러한 점진적인 고립과 단절은 사람의 근본적인 성격마저도 변화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에게 ‘빨리 잊어라’ ‘지나간 일에 매달리지 말고 이제 일어서라’ 라는 조언들은 더 해롭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보다는 오히려 자신들에 대한 비난을 강화할 수 있다. 내가 그곳에 가지만 않았더라면, 내가 엄마 말을 들었더라면, 등으로 자신의 선택에 대한 자책이 발생한다. 그리고 점차 자신이 꿈꿔왔던 삶과 멀어지는 실제 삶을 보면서 자책의 정도도 커진다. 물리적인 시간은 흘렀을지 모르지만 트라우마 희생자들의 마음의 시간은 여전히 그때에 머물러 있다. 당시의 이미지, 신체 감각, 냄새 등 거의 모든 것이 저장된다. 그리고 그 외상 사건과 연관된 그 어떠한 자극을 마주해도 그 당시의 공포를 다시 경험한다. 즉, 오리지널 트라우마와 유사한 자극, 트리거는 트라우마 당시의 고통을 다시 끄집어내고, 이러한 트리거는 그 어떤 것도 될 수 있으므로 트라우마 희생자들은 최대한 어떤 자극도 느끼지 않고 살려고 발버둥 치는 것이다.


물리적인 시간은 흘렀을지 모르지만 트라우마 희생자들의 마음의 시간은 여전히 그때에 머물러 있다. 당시의 이미지, 신체 감각, 냄새 등 거의 모든 것이 저장된다. 그리고 그 외상 사건과 연관된 그 어떠한 자극을 마주해도 그 당시의 공포를 다시 경험한다.


 

# 트라우마의 치료

: 직면하고 아파하고 통과하고 극복하기


그렇다면 트라우마 환자들은 어떻게 치료해야 할까? 대부분의 트라우마 환자들은 트라우마 사건과 관련된 그 모든 것들을 피하고자 한다. 그런데 모든 것이 트리거가 될 수 있다. 즉, 언제 어디서 고통과 공포가 다시 발생하지 모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단순히 피하는 것은 이길 수 없는 게임을 하는 것이다. 그 문을 통과하려면 그 문을 지나가야 한다라는 말이 있다. 괴롭겠지만 트라우마를 마주하고 극복해가는 자세가 요구된다.

그러나 어떤 사전 조치도 없이 트라우마 환자를 고통에 내모는 것은 절대 안된다. 피해자들은 트라우마에 대해 기억해가면 불안과 연관된 자율신경계가 흥분되어가는 증상을 보였다. 즉, 트라우마의 희생자들은 트라우마에 대해 대화를 할수록 더 힘들고 혼란스러워 한다. 그러므로 일차적으로는 트라우마의 기억을 처리 혹은 직면하는 것보다 피해자가 안전감을 느끼게 해야 한다. 자기 스스로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는 확신과 자신감을 지니도록 해야 한다. 사실 트라우마의 치료는 희생자로 하여금 위험은 이제 없으니 지나친 방어를 이제 풀어도 된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안전치 않은데 방어를 풀라고 하면 오히려 더 위험에 처하게 된다. 예를 들어, 깡패로부터 집단 폭행을 당해 병원에 와 치료를 받았는데 깡패들이 여전히 주변에 있다면 피해자는 결코 안전감을 못 느낀다. 따라서 피해자를 불안하게 하는 요인이 있는지에 대해 점검해야 한다. 만일 있다면 우선 이를 제거하고 피해자 스스로가 적절히 대응할 수 있을 때까지 충분히 기다려줘야 한다. 이와 같이 트라우마에 직면하게 하기 전에 안전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 치료의 1단계이다.

이후 2단계에서는 기억을 처리하는 것을 도와줘야 한다. 즉, 트라우마의 기억에 대해 말로 표현해봄으로써 본격적으로 직면하게 하는 것이다. 트라우마 기억은 의식적으로 자각하기 힘든 압도적인 신체의 기억이므로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그들로 하여금 차근 차근 기억을 말로 표현하는 것을 도와야 한다. 언어로 트라우마의 경험을 재구성하게 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는 파편같이 흩어져 있던 기억들을 이야기를 통해 통합해 나간다. 이는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다. 왜냐하면 이야기 중간에 트라우마 당시의 감정에 의해 완전히 압도되기 때문이다. 지금 내 눈앞에 트라우마가 일어나는 것처럼 느낀다. 뿐만 아니라 이와 같이 기억이 처리되는 과정에서 피해자들은 상당한 상실감을 느낀다. 그 사건으로 인해 나의 소중한 사람, 건강, 경력 등을 다 잃었다고 생각해보아라. 그렇다면 그러한 상실감은 어찌 보면 불가피하고 당연할 것일 수 있다. 이러한 상실감은 슬픔과 절망감을 초래하고 이로 인해 환자들은 상실감을 회피하려 한다. 그러나 이는 트라우마로부터의 회복을 막을 뿐이다. 물론 트라우마에 대한 기억을 회상할 때마다 슬퍼지고 절망스러워진다. 그래도 이를 조금씩 이겨내고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해야 트라우마는 서서히 그 강렬함과 특별함을 잃는다.

마지막으로 고립감에서 벗어나 사회적 연결을 다시 만들어 가게끔 해줘야 한다. 정서적 고통을 이해 받고 공유할 수 있는 가까운 사람들을 만들거나 다시 찾게 해야 한다. 이 세상에 나는 혼자 가 아니고 항상 내 옆에 누군가 있다 라는 믿음. 항상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으며 그들은 언제든지 내편을 들어준다는 느낌. 이미 지나간 과거이고 현재 나는 안전하다는 확신, 이제 내 삶을 주체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는 자신감. 자신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이 치유의 핵심이자 마침표가 되는 것이다.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청년을 치유해가는 영화 ‘굿 윌 헌팅’에서의 명대사가 있다. ‘ 그건 너의 잘못이 아니야.’ 트라우마 피해자들은 그 사건의 잘못을 자기 자신에게 돌린다. 혼자 자책하고 혼자 아파하며 자신을 도우려는 선의의 의도조차 밀어낸다. 하지만 그 사건은 절대 그들의 책임이나 잘못이 아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을 그들이 알아야 한다. 물론 아플 것이다. 이 사실을 깨닫기 까지 그들은 슬픔과 정면 승부를 해야하며 상실감도 극복해야 한다. 하지만 충분히 아파하고 슬퍼해야 한다. 그리고 이 기간이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슬픔이 얼마나 지속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왜냐면 그 과정을 통해 피해자는 트라우마로 인한 슬픔과 아픔의 인생에서 멀어져 갈 것이다. 그것이야 말로 희생자들이 새롭고 자신 있는 삶을 사는 데에 있어 제일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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